장기연애 이별하셨나요? - 1부 (어떻게 7년 만나고 왜 해어졌대?)
쓸까 말까 계속 고민했지만,
그래도 필자가 당신을 진심으로 공감하고 있다는 걸 표현하기 위해, 그리고 내 글이 진심이라는 것을 표하기 위해 적어본다.
모든 관계가 그렇듯 나의 기억과 그의 기억이 다를테니,
추측 외에 사건들만 서술해보고자 한다.
7년 연애의 서사
그와 나는 17살 때 처음 만났다.
("우리 17살에 만났는데 벌써 스물여덟이야~!" ft. 성해은님)
전공(?)으로 구분되는 학교였고, 같은 과이자 소수과였기에 3년 간 같은 반에서 생활했다.
처음 본 1, 2년 간은 그냥 아무 생각 없는 '좋은 친구'였는데,
이야기를 할수록 비슷한 생각이 많았고 차분하고 조용한 분위기가 맞아 편안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렇게 스며든 건지, 그냥 어느 날 체육복을 입고 창문 앞에 서 있는 그가 달라 보였다.
오글거리지만 어린 마음에 빛이나 보였다 😅
흔히 말하는 입덕 부정기를 한참 겪고 결국 수용한 후,
(관계가 진전된 과정은 주관적이니 생략하고) 19살에 그리 길어질지 몰랐던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후 고비가 꽤 있었다.
- 어린 나이였지만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처음 이별을 했었고,
- 고3에 만났으니 당연히 학업에 대한 부담으로 만남과 헤어짐(그래봤자 1-2주)을 반복했고,
- 다른 대학교에 들어가 다른 생활을 하면서 새내기에 헤어졌다가,
- 헤어지진 않았지만 입대 전 혼란스러워하는 그와 불안한 나로 인해 또 위기가 있었고,
- 군 생활 기간 동안 코로나가 터져 7개월 동안 생이별을 하며 권태기가 왔다가,
- 와중에 내가 교환학생을 떠나며 장거리도 하고
- 그의 제대 후에는 내가 직장인 되고 그는 학생으로 돌아가며 서로 달라진 상황에 또 위기가 있었다.
그치만 그 오랜 시간 속 깨붙하며 오히려 사랑과 소중함이 더 깊어졌고
또 이겨내며 신뢰가 생겼으며,
그 속에서 서로의 바닥을 보고도 품어주는 모습에 더 사랑하게 되었었다.
(대부분 장기연애 경험자들이 공감하겠지만)
만난 시점도 그렇고 기간도 기간인지라,
대부분 가치관과 취향을 함께 만들어 갔으며
가족보다도 더 의지가 되는
나 스스로보다 소중한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 왜 헤어졌는데?
https://youtu.be/_YnS3V98bsk?si=ucSzB5_daMPSE-2N
한순간이었다.
아닌가, 점차였나.
이별의 진행에 관해서는 아직도 결론을 내지 못했다.
그 해의 일들을 적어보자면, 이렇게 진행됐다.
어쩔 수 없이 내 인생의 시점 순으로 정리해보겠다.
#신입사원과 복학생
우리는 매일 1시간 이상 통화를 했었다.
그런데 서로의 상황이 달라진 후, 점점 전화 시간이 줄었다.
(여기는 자기반성 타임)
전화를 하며 회사의 일을 얘기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그.
그걸 이해해주지 못하고 답답해했던 나.
그의 학생으로서의 힘듦을 평가절하하기 시작한 나의 오만.
점점 그와 전화하는게 피곤해졌고,
통화 속 침묵이 길어졌다.
물론 군화-곰신때도 이랬지만 벽이 더 높아진 기분이었다.
#대3병, 대4병과 중고신입 이직러. 달라진 삶의 방향성.
원하던 회사에 입사하게 되어 잔뜩 기대에 부푼 나.
이제 어느정도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하여, 그와 더 안정되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다른 인생의 변곡점을 생각하고 있었다.
휴학하고 "방황"(그의 표현)하고 싶다는 그.
'워홀을 갈까, 그냥 쉬어 볼까, 여기저기 여행을 갈까?' 이야기했다.
물론 1,2년 얼마든지 기다려줄 수 있지만,
대학원 박사와 유학까지 생각하는 그였기에
만약 방황을 하더라도 몇 년일지, 그럼 언제쯤 나와 가정을 꾸려도 괜찮을지 계획을 공유해주길 바랬다.
사실 계획보다 확신을 원했고 그래서 조급해졌다.
분명 군대에서 주고받던 편지에서는 나와의 결혼을 구체화하던 그인데 (지금 생각하면 그저 소꿉장난이지만)
막상 시간이 흐르고 결혼적령기가 다가오니 점점 피하는 그의 모습에
나는 많이 불안했다. 그래서 알게 모르게 계속 그를 압박한거 같다.
#장기연애, 그의 첫 거짓 약속
불안해진 나는, 잔뜩 고슴도치가 되고 말았고
과거의 상처가 된 함께 소속되어 있던 공동체 일로도 다시 예민해졌다.
그래서였을까 그가 처음으로 거짓말을 하고 약속을 가졌다.
오래 만나니 무섭게도 촉으로 알겠더라.
결국 겹지인의 스토리를 보고 확신을 갖고 그에게 물어봤다.
평소에는 전혀 신경 안쓰던 일일 텐데,
괜히 남녀 섞인 약속을 어떻게 거짓말을 하냐며 이야기했다.
그치만 그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오해가 생기면 늘 바로 미안하다고 하던 친구인데, 그저 침묵을 유지했다.
자존심에 그리고 (사실 그를 당장 잃고 싶지 않아서) 시간을 갖자고 했다.
2주 동안 연락하지 말자고 했지만,
늘 이런 시간에 중간에 연락을 주던 그였는데 이번에는 진짜 연락이 없었다.
내가 연락하지 말라고 해놓고 불안해졌다.
지금 보면 정말 바보 같은 연애 방법인데, 난 어
쩔 수 없이 그에게는 약했던거 같다.
그래서 먼저 연락했다.
(그렇다고 한없이 약했다기엔 처음이었지만)
오랜만에 만난 그는 계속 울먹이며 이야기하는 나의 모습에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미안하다고도 하지 않았다.
결국 불안함과 서러움에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그제서야 안아줬던거 같다.
그렇게 어영부영 그 일이 지나가고 잠시 다시 행복의 시간이 찾아왔다.
예전처럼 매일 즐겁게 통화하고,
좋아하는 장소들로 드라이브를 가고,
(전에 하지 않던 행동들인) 갑자기 내가 먹고 싶다는 디저트를 서프라이즈로 가져오기도 했다.
그렇게 다시 안정이 된 줄 알았다.
적어도 그해, 그 다음해까지는 헤어지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다.
#어느 해의 마지막, 맞이하고 싶지 않던 새해
그리고 그해의 크리스마스
그의 가족들과 함께 보냈다.
즐거운 홈 파티를 하다가, 그의 어머니께서도 슬쩍 결혼 얘기를 꺼내셨다.
기대하는 마음으로 그를 쳐다봤지만, 그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다음주,
역시나 즐겁게 데이트를 하고 있었다.
함께 좋아하는 음식의 새로운 맛집을 찾아 너무나도 맛있게 먹고
내가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부른 팬케이크를 먹기 위해 예쁜 카페도 갔다.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참지 못하고 다시 결혼 얘기를 꺼내버렸다.
결국 또 말이 없는 그의 모습에 카페에서 울고 말았고, 바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차에 탔다.
분명 이럴 때 나를 달래주거나 대화하던 그였는데,
가는 내내 아무 말이 없었다.
아니 옆을 보니 그도 울고 있었다.
그때 진짜 이대로 끝인건가 생각이 들었다.
잠시 졸음 쉼터 같은 곳에 차를 세우고,
그가 대화를 요청했다.
그런데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방어적이고 두려움 많고 자존심이 강해서,
하고 싶은 말을 솔직히 하지 못하고 머리를 굴렸다.
어떻게 해야 안헤어질 수 있을까 하며.
그때 차에서 나오는 라디오 소리가 안그래도 작은 내 목소리로 그에게 말하는 데에 방해된다고 느껴서,
갑자기 라디오를 껐다.
하지만 라디오를 끄고도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제대로 된 한 마디를 못하고 그 시간이 끝났다.
그리고 집 앞에 도착해서, 그가 그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애석하게도 이 순간이 여전히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의 마지막 대화인데.
나중에 상담을 받아보니 큰 스트레스로 인한 일시적인 기억장애라고 한다.
그리고 나는 그를 제대로 보지 않고 바로 집으로 들어갔다.
그후 우리의 연락을 보니 이런 상황이었다.
나는 울며 운전한 그가 걱정되어서 좀 쉬고 출발하라고 하고 싶었지만,
고민하던 그 시간에 그는 이미 도착했다.
그리고 스스로가 이해가 안되지만,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럼 네 말은 헤어지자는 거지?'
그리고 그의 답장은 이거였다 '미안해'
하필 평생 잊지도 못하게 12/31 그해의 마지막 날이었다.
(그렇게 끝.)
(물론 이후 완벽한 끝까지 추가 스토리 있음)
그래도 기억들을 꺼내어 이렇게 적고 공유할 수 있다는건,
나아졌다는 거겠죠.
눈에 결석이 생길 정도로 울고 (째는거 아파요ㅠ)
그가 없는 첫 생일이 어색해 죽으려 했던 저도 이렇게 되었으니,
여러분도 나아질거에요. 걱정말아요.
다음 이야기는 어떻게 지난 2년을 지내왔는지,
어떻게 그 시간들이 지나가게 되었는지 조금씩 나눠보겠습니다.